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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의 신론 비판 (최 낙 범 교수) 2021-10-12 오후 6:17:00 관리자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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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논단>

지방교회의 신론 비판
최 낙 범 교수
총회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광주캠퍼스)
이 땅에 많은 교회가 하나님나라의 구현을 위해 존재하면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반면에 교회, 사회, 가정을 뒤흔들 뿐 아니라 해체시키는 많은 이단들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그 역할을 잘 감당하려면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지켜온 바른 복음과 바른 교리를 교인들에게 체계적으로 가르치며 계승해야 하고, 밖으로는 이단들의 잘못된 교리의 문제점을 지적해 줄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바른 복음과 바른 교리를 그들에게 변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전통교회는 이단들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지방교회의 교리를 이해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지방교회의 교리에 대한 이해가 여러 이단들을 이해하는데 지름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방교회의 지도자인 위트리스 리의 신론을 언급한 후에 그것을 개혁신학의 입장에서 논박하며 바른 신론을 변증하고자 한다.
우선 위트니스 리의 주장인 지방교회의 신론을 보자. 그들의 신론은 개혁신학의 신론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의 신론은 한마디로 양태론적 단일신론이다. 여기서 양태론적 단일신론이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기본적인 개념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동일한 한 인격으로 간주한다. 이 말은 한 하나님이 성부도 되시고 성자도 되시며 성령도 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신삼위(一神三位)가 아니라, 일신삼역(一神三役)이다. 결국 한 위격의 하나님이 삼역(三役)을 한다는 것이다(1인3역).
이때 유의할 점이 있다. 그것은 한 하나님이 세 가지 양태(Mode)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양태론적 단일신론이라고 부르고, 또 세 양태의 사역이 분류된다는 점에서 경륜적 삼위일체(사역적 삼위일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양태론은 삼위일체론이 형성되어 가던 4세기 무렵에 있던 이단으로서 그 당시의 대표적인 인물은 사벨리우스, 노예투스, 파락세아스 등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이런 양태론을 믿고 따르는 이단들이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이단이 지방교회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양태론은 그들의 지도자 위트니스 리의 저서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이에 그들의 주장을 알 필요가 있다.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은 세 개의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기 위한 한가지의 세 단계이다. 이에 아버지, 아들, 성령은 세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기 위한 한 하나님의 세 방면이다. 예를 들어 얼음은 물이 되고 물은 수증기가 된다. 즉 "한 실체가 세 가지 형태"를 띠고 있다. 그 실체가 수증기의 상태에 이를 때에 우리가 호흡하는데 유용하다(위트니스 리의 하나님, p.297).
또 “아버지는 온전한 수박으로 설명된다. 아들은 조각난 수박으로, 성령은 수박의 즙으로 설명되어진다. 이제 여러분은 요점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일 뿐 아니라 아들도 된다. 그리고 아들은 아들일 뿐만 아니라 성령이 되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 이 수박은 먹기 위한 조각도 되며, 우리 안에 있는 즙도 된다. 그 수박은 먹혀진 후 없어진다. 본래 그 수박은 식탁 위에 있었지만, 그것을 먹은 후에 그 수박은 온 가족 속에 있는 것이다”(위트니스 리의 하나님의 경륜, pp.55-56).
또 “왜 그 분의 경륜을 이루는데 하나님의 세 인격들이 필요한가? 아버지, 아들, 성령은 서로 다른 세 하나님이 아니라, 세 인격으로 나타난 한분의 하나님이다” (위트니스 리의 하나님.p.363). 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분리된 세 인격이나 세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은 한 하나님, 한 실제, 한 인격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이름으로 지칭된다. 이름은 그 인격을 지칭하며, 그 인격은 그 이름의 실제이다. 신성한 삼일성의 이름은 그 분의 인격과 동등한 신성한 존재의 총체이다. 하나님은 삼일, 즉 셋-하나이시다”(위트니스 리의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되시는 삼일 하나님.p.52).
이런 지방교회의 주장들은 전통적인 삼위일체론처럼 삼위의 독립된 위격을 말한 것이 아니고 기본적으로 한 하나님이 어떤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부가 성자로, 성자가 성령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면 그 이전의 존재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 일신삼위(一神三位)가 아니라, 일신삼역(一神三役)이 된다. 즉 영원한 세 위격이 한 하나님으로 존재한다는 성경의 신비한 계시를 그들은 한 위격의 하나님이 단지 삼역(三役)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위트니스 리의 많은 주장들은 전통적인 삼위일체가 아니고 양태론적 단일신론임에 틀림없다. 이것만으로도 지방교회가 이단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트니스 리의 지도아래 있는 지방교회가 왜 이단인지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볼 때 더 분명해 진다.
그래서 그들이 강조하는 양태론이 성경의 지지를 받는지, 아니면 지지를 받지 못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들의 강조점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위격이 동일하다는 양태론인데, 과연 그런지 성경에 나타난 예를 들어 보자. 먼저 성자 예수님이 하나님아버지에게 기도한 것을 보면 예수님과 하나님의 위격이 동일하면 기도할 수 없고, 위격이 달라서 예수님이 기도한 것이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보면 이 사건은 우리의 죄로 인한 진노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건이고, 동시에 하나님께 드린 제사인데, 위격이 동일하다면 하나님께 드린 제사가 될 수 없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기 전 하나님께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에게 부탁하나이다."고 기도한 것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위격이 다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또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받는 것을 보면 예수님과 하나님의 위격이 다르기에 성자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성부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했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했지, 위격이 같으면 불가능하다. 또 스데반이 순교할 때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은 "예수님"을 보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성부, 성자, 성령의 위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방교회가 주장하는 양태론은 비교리적일뿐 아니라 비성경적이다. 따라서 지방교회는 전통적인 삼위일체를 믿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이 표방하는 전통교회의 삼위일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삼위일체란 하나님이라는 실체(본체&8001μοουσ&8055α, essence)가 하나이고, 이 실체 안에 각기 독립적인 삼위(位)인 성부, 성자, 성령이 있는데, 이 삼위는 실체(본체)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또 다른 위들로부터 분리되지 않으면서 구별된, 그리고 종속되지 않은 인격체(지·정·의)라는 것이다. 그리고 삼위는 권세와 영광이 동등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세 가지 명제를 발견한다. 첫째, 하나님은 영원히 서로 구별되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존재하신다(요1:1~216:7,눅22:42 6:16,17, 28:19, 고후13:14, 요10:30). 둘째, 성부, 성자, 성령 삼위는 각각 완전한 하나님이시다(고전8:6, 갈1:1,신4:35 롬9:5, 요1:14,18행5:3~4, 요15:26). 셋째,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삼위)은 각각 하나님으로 신적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이다(신6:4, 요5:54, 엡4:5~6, 롬3:30, 고전 8:4). 한마디로 신적본질(하나님)은 하나지만 신성을 가진 분(위)은 셋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존재방식인 삼위일체 하나님은 신적계시의 산물로서 기독교의 핵심 진리이다. 그러하기에 삼위일체하나님은 자연의 빛이나 이성의 사색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오직 인간이 계시의존사색을 통해 믿음으로 받을 때 알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핵심진리인 삼위일체를 믿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모든 신앙행위와 고백이 빗나갈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하겠다. 동시에 이 진리를 부인하면 결국 이단에 떨어지고 만다는 사실도 알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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