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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연구(17) 이권희(총회신학 학술원 교수) 2021-06-09 오후 4:41:00 관리자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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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연구(17)

이권희(총회신학 학술원 교수)

지난 지면에서는 시편 3편을 메시아사상과 관련지어 연구하였다. 이어서 이번 지면에서는 시편 3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4편에 관해 살펴보려고 한다.
많은 학자들은 3편과 4편이 모두 다윗이 경험한 위기상황에서 비롯된 시들이며, 3편이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하심으로 맞게 된 아침의 감격을 노래한 ‘아침 찬송시’라고 한다면, 4편은 고난 가운데 두려운 밤이 찾아왔지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함으로서 평안히 밤을 맞이하며 부른 ‘저녁 찬송시’라고 말한다. 즉 3편과 4편은 아침과 저녁으로 연관된 시이다.
실제로 3:5은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라면서 다윗이 밤새 평안히 잠을 자고 난 후에 한 신앙고백임을 암시하며, 4:4과 4:8에서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라는 표현은 이 시를 통한 찬양의 노래가 밤에 불러졌음을 암시한다. 이 때문에 3편은 후대에 ‘아침 찬송시’로 아침 기도나 예배에 연주되었으며, 4편은 ‘저녁 찬송시’로 저녁 기도나 예배에 연주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시들이 노래하는 고난의 저작 배경에 대하여 3편에는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는 표제를 통해 상황에 대해 설명하지만, 4편은 시가 저작될 당시의 상황에 대한 제시가 없다. 그러나 이 시를 연구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3편과 4편이 모두 삼하 15-18장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는 B.C. 979년경의 압살롬의 반역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 가운데 3편은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과 동조세력으로부터 쫓기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조속한 구원을 간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반면, 4편은 다윗이 동일한 고난 가운데에서도 자신을 끝까지 도우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반드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두 시가 모두 다윗이 극한 고난의 상황에 처한 가운데에서 부른 노래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취적 신앙에 근거하여 반드시 승리하고 구원 받을 것임을 확신하며 선포한 노래라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매우 심각함을 원수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언급함으로서 강조한다(3:1, 2, 6, 7). 여기서 3:1의 ‘나의 대적’에 해당하는 ‘차라이’는 ‘옴짝달싹 못하게 하다’, ‘괴롭히다’라는 의미를 가진 ‘차라르’에서 유래한 명사 ‘차르’의 복수형에 1인칭 소유격 접미어가 붙은 형태로서 ‘나를 괴롭게 하는 자들’이란 의미이다. 이 단어의 의미처럼 다윗의 대적들은 도피하는 다윗을 향해 그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므로 전혀 희망이 없다고 확신하여 그를 조롱하였다(3:2). 그들 가운데 대표적 인물은 시므이였다(삼하 16:8). 이러한 대적들의 비아냥거림과 조롱은 다윗에게 가장 아픈 현실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평생 하나님만 사모하며 의지하고 살아왔기에 곤경에 처한 자신에게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침묵이 가장 큰 고통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윗의 심적 고통을 잘 아는 대적들이었기에 그들은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을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신 것으로 단정 지으며 조롱하며 비아냥거린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침묵이 다윗을 버리신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대적들의 조롱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주제넘은 행위였으며 죄를 범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주제넘은 자들의 조롱과 다윗의 고통을 하나님께서는 잘 아시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개입하시지 않으셨을 뿐 결코 다윗을 외면하지 않으셨으며,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변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는 결코 변하지 않으셨다.
과거에 자신을 사랑하고 보호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다윗은 그동안 대적들에게 향했던 자신의 시선을 하나님께 돌린다. 3:3의 ‘주는’으로 번역된 ‘웨앗타’는 과거 자신과 동행하셨고 언약을 맺으셨던 긴밀한 관계의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으로서 대적들에게서 눈을 돌려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음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이어서 다윗은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라는 삼중적 비유 속에서 ’나의‘라는 표현을 3회 사용한다. 이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부각하며 오직 자신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다는 신앙고백이었다. 이러한 다윗의 시선 전환은 대적들의 존재 가치를 무너뜨리는 신앙의 승리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은 대적들에 대한 자신의 저항이 자신의 곤경을 극복하는 길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개입만이 해결책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는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신앙에 확신을 가지며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된 다윗의 문제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대신하여 개입하시게 되셨다. 그러므로 다윗의 구원과 승리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겪는 신앙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 놓인 자신에게 침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 역시 자신을 괴롭히는 수많은 대적들로 인한 고통이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즉 시편 3편과 4편의 찬양은 다윗의 상황이 바뀌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윗은 그가 처한 상황이 바꿔지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자신에게 은혜를 주시고 보호해 주셨던 하나님께 시선을 돌림으로서 승리를 노래하게 되었다.
시편 3편과 4편은 다윗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날들 가운데 찾아오는 아침과 밤에 드린 신앙의 고백이다. 대적들을 향하던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며 올린 다윗의 기도는 어려운 상황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개입이 있게 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다윗의 기도처럼 현재의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기도는 하나님의 즉각적인 응답으로 우리의 상황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킴으로서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시는 원인이 된다.

시편 3편과 4편은 오늘날 여러 가지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로 인해 고통 받는 성도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선사한다.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이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과 보호가 사라졌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세상의 문제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극복하고 승리하게끔 우리의 문제에 개입해 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셨고 보호해 주셨으며, 이후로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호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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