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잘하는 방법’ 설교의 교만은 가장 위험한 독소 | 관리자 | 2022-01-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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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잘하는 방법’ 설교의 교만은 가장 위험한 독소 [기획연재] 한일장신대 정장복 총장의 설교 코멘트 [2007-06-25 11:30]1. 패망으로 가는 교만 전체 목회 중 설교사역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고 있는 설교자는 언제나 설교 준비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된다. 남의 설교집에서 적절한 설교를 그대로 들고 나가서 자신의 설교인 양 힘있게 외치는 설교자에게는 설교의 준비란 자신이 원하는 설교를 찾는 작업 외에는 별다른 수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작업이다. 그러나 성실한 설교자들은 한 편의 설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의 설교를 위한 준비를 서두르게 된다. 설교를 자신의 생명처럼 알고 사는 설교자는 가장 분주했던 주일을 보낸 후 곧 맞이한 월요일 새벽 제단에서 간구하는 기도부터 그 내용을 달리한다. 그들은 “다가오는 제단에서 이 종이 어떠한 말씀을 가지고 무어라고 전하오리까”하는 질문과 함께 운반해야 할 말씀을 구한다. 성실한 설교자는 어떠한 형태의 목회 현장에서 뛰든지 그의 머리 속은 또 다시 서야 할 강단에서 선포해야 할 말씀을 찾는 일로 가득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 필요한 자료의 발굴에 온 정신을 쏟게 된다. 외쳐야 할 말씀을 언제나 생각하고 거기에 전폭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함은 말씀의 종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설교 하나만은 자신이 있다. 별다른 수고를 쏟지 않아도 나의 설교는 성공적이다”라고 자신있게 자랑 삼아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난다. 이처럼 설교를 조금도 부담 없이 손쉽게 생각하는 설교자들을 볼 때마다 필자는 외계인을 만난 것처럼 느껴진다. 이 때마다 브라이트 신학교의 설교학 교수였던 헌터 베켈히머가 남긴 말이 떠오른다. “성공적인 설교란 쉬운 것이 아니다. 설교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성공적인 설교가 어떤 것인지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설교란 한 인간의 신앙과 정성어린 마음과 언어의 기술과 그리고 지적인 모든 바탕의 최고점을 요구하는 중요한 일임을 모른다.” 실질적으로 설교의 깊은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설교를 단순하게 생각하거나 쉽게 생각할 것이 아님을 경험과 함께 부르짖고 있다. 그리고 설교를 배운다는 사실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일리온 존스가 갈파했던 “설교자가 ‘현재의 나는 초보 단계를 벗어난 완벽한 설교자이다’라고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라는 말은 교만한 설교자들에게 많은 의미를 주고 있다. 내가 성공적인 설교라고 믿는 그대로 듣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으로 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설교의 성공이란 한 인간에게는 영원한 이상이다. 설교자가 하나의 도구로 최선을 다했을 뿐, 그 성공 여부는 설교자의 계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설교의 교만’은 가장 위험한 독소이다. 이러한 독소를 버리지 못한 설교자는 자신의 생계 유지를 위하여 흥미롭게 꾸며 던진 자기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외치고 사는 거짓 선지자가 되기 쉽다. 그 결과는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 저주받은 선지자들로 탈락될 가능성을 갖게 된다. 언제나 스스로 성공적인 설교자라고 자부하면서 땀 흘리는 준비에 태만한 설교자 앞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는 말씀의 푯말이 견고히 서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도발드슨이라는 조각가가 “나의 현실이 나의 이상과 동일한 것으로 발견될 때 나는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존재이다”라고 한 말에 유의하여야 한다. 일리온 존스는 이상의 말을 인용하면서 “설교자가 자신의 설교에 만족할 때 그는 스스로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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