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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과 다른 복음에 관한 신학논증 (김 재 홍 교수) 2021-10-13 오후 2:03:00 | 관리자 | 2022-01-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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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 복음과 다른 복음에 관한 신학논증 김 재 홍 교수 바울은 자신이 오랫동안 수학하고 삶 속에 실행해 온 모세의 율법과 장로의 유전과 전통적 해석인 미드라쉬를 부활하신 예수 앞에 완전하게 버렸다. 여기서 바울이 버린 율법은 예수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갈라디아 교회 안에 다른 복음을 따르는 교인들을 향해 외쳤는데,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밝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복음을 좇는 율법주의적 크리스천들의 미혹이 존재함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복음과 다른 복음에 대한 신학적 논쟁의 중심은 율법 문제에 집중된다.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죄와 율법에서 자유케 되었다는 십자가 사건을 믿은 것이기 때문에 다시 율법을 따르는 것은 예수의 사역을 거부하게 되는 다른 복음이 된다. 다른 복음이란 바울이 전한 복음에 율법의 행위를 더하는 행위이다.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의 정체는 율법주의자들이며, 이들이 몰래 들어온 이유는 예수를 믿음으로 자유케 된 알곡 백성을 미혹하여 다시 율법의 종으로 삼기 위한 마귀의 궤계인 것이다. 계시록 2장 9절에 나오는 사탄의 회당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명백한데, 그것은 서머나 교회안의 율법주의자인 유대인들이 들어와 복음만을 좇는 성도들을 미혹하여 다른 복음을 따르게 하였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사람은 물론 천사도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이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는 기쁜 소식이다. 갈라디아서 2장 18절에 나오는 헐었던 것이란 율법을 말하는 데, 예수가 헐었던 율법을 인간이 다시 세우면 예수의 사역을 무효화시키는 변절된 복음이 된다. 율법을 다시 세우는 행위는 자신을 다시 죄인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짓이 된다. 갈라디아서 3장 1절에 나오는 ‘누가 너희를 꾀더냐’의 누가란? 다른 복음을 좇는 율법주의자인 교인들인 것이다. 복음의 진리에 율법의 행위를 보태면 즉시 다른 복음이 된다. 로마서 7장 12절에서 보면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의롭고 선한 것이 분명하지만, 인간 자체가 죄 아래 있는 죄의 종이기 때문에 자신의 선행이 오히려 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죄론의 핵심이다. 로마서 7장 13절에 보면 그 결론이 보다 명확한데, 계명을 열심히 지키면 지킬수록 인간의 죄가 심히 죄로 드러나게 되는데, 율법은 죄에 눈 뜨게 하는 몽학 선생이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서는 율법의 행위로써 의롭다 함을 얻는 육체가 없다는 말씀이 죄인이 되어버린 인간과 거룩하고 선한 율법을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율법의 기능 그리고 주셨던 목적은 죄인인 인간을 거룩하게 만들어주는 선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율법은 사탄의 역할과 같이 인간의 죄인 됨을 드러내는 기능적 역할을 한다. 이에 대한 가장 유효한 사례는 아브라함의 신앙경로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아브라함에게는 그 어떤 율법을 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본 문제에 접근해 볼 수 있다. 로마서 4장 11절에 아브라함이 받았던 할례의 표는 율법을 지키라는 인침이 아니라, 믿음으로 된 의인으로 인침 받은 것이다. 죄는 이미 에덴동산에서 인간에 의해 발생된 것이지만 죄를 죄로 인식할 수 없었던 이유는 율법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율법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심히 죄인된 것을 알게 해주는 인식적 기능이다. 갈라디아 교인들 사이에 야기된 신학적 교리의 불일치의 주범은 십자가에 못 박았던 율법의 망령을 도로 부활시키고자 하는 적대적 세력의 집합이며 분열의 세력인 것이다. 교회 안에 성령을 따르는 자와 율법을 따르는 두 부류의 세력이 공존하지만, 율법을 따르는 세력이 더 강하게 보이는 이유는 사람을 행동과 외모로 판단하기 때문인데, 이스마엘이 이삭을 박해한 이유는 자기보다 뒤에 태어난 동생이란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육신으로는 동생으로 보이지만, 성령에 속한 사라의 자식이다. 로마서 6장 20절에 율법이 들어온 이유는 인류의 흉악한 많은 죄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죄가 많이 드러나야 예수께서 지신다. 갈라디아서 3장 17절에서 말하는 430년이란 세월은 아브라함의 복음과 모세가 받은 다른 복음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바울의 논증이 아닐 수 없다. 430년 후에 나타난 모세의 율법이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음의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갈 3: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율법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라는 바울의 선언은 마치 다른 복음에 대한 완벽한 단절의 외침이다. 율법도 거룩하고 선한 것이지만 복음의 안내자 곧 세례요한의 역할을 할 뿐이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세례요한이 예수 앞에서는 목숨을 내어 놓은 것 같이 다른 복음에 해당하는 율법도 예수의 복음 앞에 죽어야 한다.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으며 그것이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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