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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강해설교는 어떻게 할까... ( 공 지 ) 관리자 202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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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는 어떻게 할까

설교, 디자인을 어떻게 할까(11)…성서는 질문하지 않으면 대답 없다


"강해설교란 주어진 성서 본문을 문자적·역사적 배경에 의해 일정한 조직 하에 현대의 청중에게 적용하는 설교"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강해설교에 대해서 비교적 목회자들이 자주 하는 설교 형식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사족을 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강의의 뒷부분에 가서 꼭 알아두어야 할 것만 이야기하기로 하고, 목회자나 강해설교자에게는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만 말하기로 한다.

1. 성서를 읽는 마음의 자세

강해설교 준비는 우선 성서를 펴고 본문의 말씀을 읽는데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자세로 읽고 생각하며 이해하는지, 회중에게 전할 자신들의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할까.

나(自我), 강해설교 준비자는 지금 하나님 말씀 앞에 있는 나로서 "하나님 앞에 존재하고 있는 나"다. 즉 나의 실존을 먼저 물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 앞"이란 "공간적" 개념이기보다 "관계적" 개념에 실존한다. 강해설교를 준비해야 주일 밤 예배를 인도할 수 있고, 3일기도회를 진행할 수 있고, 그래야 목회자이고 내 가족과 내가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상투적이며 일상적·습관적 마음의 자세가 아니라, 언제나 나는(성직자) 이미 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자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고,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것, 하나님이 불러서 나를 택하고 이 일을 맡기신 섭리적(숙명적 관계)관계에 들어선 자인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하고 있는냐가 중요하다. 그러면서 그간 목회하는 중 고뇌도 고통도 억울한 일도 무시당한 일도 섭섭한 일도 많은 자신이, 하나님이 아니옵고는 위로를 받을 수도 이해해줄 자도 없는 이 삭막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와 관계에서 연약하고 부족한 나 자신을 생각할 때, 진실로 나의 생명이시요 내 영혼의 안식처이요 나의 힘이신 것을 고백하며 성서를 읽을 때 "지금 말씀하시옵소서 제가 경청하겠나이다" 하는 심정으로 성서를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 "하나님이여 주는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 63:1)고 말한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목이 타도록 말씀을 사모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올바른 신앙과 사명을 가질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

이 시편 기자는 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신앙이 조롱을 받고, 야훼 하나님이 이방 사람들의 조롱의 대상이 되는 정황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은 너무 태평무사하고 안일해서, 너무나 신앙의 자유가 많아서, 이스라엘이 당하는 역사적 상황이 아니라서 아무런 항변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인가?

고요 속에 들려오는 비명소리, 벼락 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靜中動). 나는 지금 노력 끝에 큰 교회 목회자가 되어서 대접도 잘 받고 무풍지대에 사니, 나는 그런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말하는가. 가만히 대지에 귀를 기울이고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있는 어떤 사람들은 자꾸 불로소득으로 재산이 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굶어 죽는 아이들, 빚쟁이 독촉에 못 이겨 날마다 지하철 전동차에 자살하는 사람들, 목을 매 자살하는 사람들, 몹쓸 병이 들어 차라리 죽자고 하는 절규를 당신들은 듣지 못하는가.

당신네 친구 목사는 개척교회 한다고 이웃 부자 대형교회의 원조로 월 50~60만 원으로 한 달 허리를 쥐어 잡고 살아가는 군상을, 당신들은 그의 시꺼먼 가슴을 보지 못해서 모른다고 할 것이다. 흔히 세상이 말하는 성공적인 목회도 못하고 다만 시골교회, 산골교회 평생을 충성스럽게 목회한 뒤 이제 정년이 되어 병들어 약값은커녕 버스비도 없는 처지의, 시골 초막에서 신음하는 연세 많으신 목사님들의 아픔을 당신들은 그 소리가 천둥소리로 들리지 않느냐 말이다.

예레미야는 자기 존재의 기반이 흔들릴 정도로 몸부림치며 고백했다. 고통의 의인 욥도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비탄의 소리를 외쳤지만(욥 3:1), 예레미야는 그의 존재 밑바닥이 뒤흔들리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상대로 절규했다(렘 20:14). 이 인간존재 밑바탕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그의 생일을 저주하며 자기가 나온 어머니 태를 "무덤이 되었더라면!" 하며 외쳤다.

또 그는 역설적으로(paradoxically) 담대히 하나님께 불을 품었다. 입에 거품을 물면서 하나님께 대들었다. 이 인간의 모순, 이 사회의 모순, 이 역사의 모순을 하나님이 용허하신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하나님 당신은 의로우신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이런 모순된 역사의 현실을 만들어 놓고도 하나님이라고 숭배나 받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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